🐝 패션 MD 가 된 이유

 나는 살아가면서 웬만한 결정들은 ‘쳐내기’를 통해서 결정했다. (다른 사람들처럼 어릴 적부터 직업에 대한 명확한 꿈이 없었고, 섬유 관련 전공을 할 것이라 생각도 못했다.) 내가 결정할 수 있는 몇 가지의 옵션들을 나열해보고 나와 맞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을 서서히 쳐냈다. 그러고 마지막에 가장 나한테 맞다고 생각하는 것을 골랐다.

 

학부 직조수업 때 작업한 원단 일부

 나는 학부 때 공예과에 속해 있는 섬유 디자인을 전공했다. ( 이것도 쳐내기 결정 방식으로 성적, 실기 실력, 재수는 죽어도 싫은 생각 등을 감안해서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1학년 때는 공통 수업으로 도자 공예, 금속 공예, 섬유 공예를 쓱 훑어보는 수업을 한 뒤 하고 싶은 분야를 선택해서 2학년 때부터 심층 수업이 이루어진다. 1학년 때 (똑같이 열심히 했다고 생각하는데도) 이상하게 섬유 관련 수업은 점수를 잘 받았다. 그래서 섬유를 선택하게 되었다.

 

 

 전공심화 수업은 주로 텍스타일, 섬유 이론, 직조, 상품기획, 디스플레이 등을 다루어서 '취업'을 원하는 학생들은 주로 MD, VMD, 디자이너 등을 꿈꾸었다. 분야는 크게 패션과 인테리어에 몰렸던 것 같다.

( '섬유미술을 전공해서 인테리어 회사로 연결이 될까?' 생각할 수도 있지만, 잘 생각해보면 벽지나 침구류 등에서 텍스타일 패턴을 찾아볼 수 있다. 이 외에도 접목할 수 있는 것들이 꽤 많다.)

 

• 직종으로 패션을 고를 것이냐 인테리어를 고를 것이냐
• 직무로 MD, VMD, 디자이너를 고를 것이냐

 

 이를 결정하기 위해서는 그 분야에 대한 앞으로의 비전이나 나의 적성에 맞는지 등을 살펴보아야 했다. 흥미가 없어서 그런지, 못해서 그런지 인테리어 관련 수업은 잘 따라가지 못했다. 그래서 패션을 직종으로 이제는 직무를 선택하는 단계가 되었다. 그러다 4학년이 되었는데, 우연찮게 어느 캐릭터 회사의 디자인실 파트에 3개월 인턴으로 뽑혀서 일을 배우게 되었다. 이 회사는 캐릭터를 가지고 패션/잡화 상품을 주로 만드는 회사였다. 

디자인실 인턴 경험의 결과,
디자인 관련 직업은 나랑 맞지 않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게 되었다.

 (진지한 궁서체에오. 잘하는 사람 너무 많아오. 좋아하는 거랑 잘하는 거랑 달라오.)

 

 

 

 그때 당시 나에게 디자인실 인턴 경험은 나한테 유익한 경험이 되었다. 나의 경험 상 디자인 실은 한마디로,

‘정답 없는 정답을 찾는' 야근의 연속이었다.

그렇다고 MD를 선택해서 야근이 없었던 것도 아니다. 홍콩 출장 때는 너무 타이트한 일정이라 숙소로 돌아와 새벽 4시까지 일을 하기도 했다. 절레절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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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근의 과정은 대략 이랬다.

디자인을 해야 한다.

여기저기 시장조사를 해서 최대한 자료를 스크랩한다.
머리를 쥐어짜며 열심히 10개 20개의 디자인을 만들어가도 상사에게 퇴짜 맞기 일쑤다.
(여기를 수정해줬으면 좋겠고~ 저기가 이상하고~)
수정을 시작한다.
상사의 의견을 반영하다 보면 처음 디자인은 어디 가고 머나먼 안드로메다 풍 디자인이 나온다.
혼돈의 카오스 속에서 어느새 퇴근 시간이 되었다.

그런데 결과물이 없다.
퇴근하고 싶은데 상사 눈치가 보인다.

머리는 안 돌아가는데 아무도 퇴근을 하지 않고 결국 대빵 상사가 “밥 먹고 와서 다시 할까?” 혹은 “다들 왜 퇴근 안 해~ 얼른 퇴근해~”가 나와야 상황 정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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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분명 열심히 일했는데 결과물이 없는 날은 성취감도 안 들고 그것이 나를 괴롭게 했다. 그래서 (특히나 전공과 관련된 직업이 몇 개가 있는데 딱히 이거다! 할 정도의 직업을 못 찾은 나와 비슷한 상황의 사람이라면) 희망 분야의 아르바이트, 인턴 등 진로선택 전에 직접적인 경험이 매우 필요하다고 느끼게 되었다. 단순히 스펙 쌓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와 잘 맞는 직업인지 테스트하는 느낌으로, 작은 회사라고 필터링하지 말고 웬만하면 경험해보는 게 좋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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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패션MD는 업무가 상품 기획해서 판매에 이르기까지 좀 더 분석하고 수치화하는 쪽에 가까워 엑셀을 달고 산다.
• VMD / 디자이너는 판매에 이르기까지 ‘디자인’ 면에 비중이 크기 때문에 포토샵, 일러스트레이션, 캐드 같은 프로그램을 달고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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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D는 본인이 한 일을 구체적으로 수치화해서 업무의 문제점& 개선점 등을 좀 더 명확하게 판단할 수 있고 그에 따라 성취감도 느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나는 이런 업무 프로세스가 더 잘 맞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MD로 나의 진로를 결정하고,

 

강남구에 위치한 패션 수입회사에 첫 발을 딛으며, 나의 패션 MD 5년 2개월의 막이 시작되었다.

이탈리아 출장 때 자료삼아 찍은 [ MIU MIU ]샵의 쇼윈도우

 비록 지금은 퇴사하고 직종을 바꾸려고 하지만, 내가 만 5년 넘게 패션MD로 일할 수 있었던 이유는 패션도 놓칠 수 없는 나의 관심 분야였기에 가능했던 것 같다.

 

 앞으로 이 카테고리는 패션MD 직무에 관한 내용과 종류 등의 기본적인 이야기와 다양한 패션 소식들을 포스팅하고, 회사 생활하면서 있었던 몇 가지 해프닝과 직무를 바꾸기로 결정하게 된 계기 등의 개인적인 이야기도 포스팅해볼까 한다. :-)